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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7. 11.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모자로고 및 구단로고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역사 

플로리다의 탬파 지역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메이저리그 구단 유치를 위해 노력해 왔다. 메이저리그의 구단 확장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이를 유치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험난했다. 198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일리노이 주 신구장 건설이 불발될 경우 연고지를 탬파베이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일리노이 주의회는 신구장 건설과 관련한 표결의 마감 시간을 넘기도록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를 중계하던 탬파 지역 방송국들은 구단 유치를 미리 축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리노이 주지사 제임스 톰슨이 의사당 시계를 일부러 고장 낸 뒤 의원들을 설득, 결국 신구장 건설을 가결했고, 톰슨 주지사는 "의사당 시계가 마감 시간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하다."라는 말을 남겨 이를 보던 탬파 지역 사람들이 분통 터지게 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인수해 연고를 옮기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구단 매각과 연고 이전이 모두 합의가 된 상태였지만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반대와 함께 기존 구단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이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1993년 리그 확장이 결정됐을 때는 최종적으로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플로리다 말린스가 창단되는 것이 결정되면서 결정되면서 세 번째로 구단 창설에 실패한 탬파는, 끝내 1995년 메이저 리그의 추가 확장 움직임에 발맞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함께 구단 유치에 성공했다. 오랫동안 탬파 지역 구단 유치에 앞장선 빈스 나이몰리가 구단주가 되었고, 1998년부터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라는 이름으로 메이저 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고로 애리조나와 탬파베이의 창단은 2021년 지금까지 메이저 리그의 마지막 신생팀 창단이다. 1998년부터 아메리칸리그에 가세한 탬파베이가 10년간 기록한 성적은 평균 승률이 4할이 안된다. MLB를 대표하는 최강팀이자 빅마켓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1990년대 팀 페이롤 1위를 각각 찍을 정도로 제법 큰 시장을 가진 토론토 블루제이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같은 지구에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시기에 창단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마찬가지로 타이트한 NL 서부를 뚫고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걸 생각하면 데블레이스의 부진은 심각했다. 여기에는 구단주 빈센트 나이몰리와 단장 척 라마가 문제를 더욱 부각 시킨다. 나이몰리 구단주는 '인터넷은 한때의 유행'이라면서 2005년 물러날 때까지 직원들의 이메일을 금지하고 자신이 직접 모든 서류를 읽어보고야 결재하던 구시대 인물이었다. 거기에 흥행이 안된다면서 팀을 닦달하면서도, 음식물 반입금지 규정을 내세워 관광버스를 3시간을 타고 온 노부부를 견과류 한 봉지 때문에 경기장에서 내쫓는가 하면, 경기 중에 바깥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보이면 그에게 다가가서 어느 쪽 입구로 들어왔는지 물어본 후 그쪽 입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즉석에서 해고하기도 하고, 기자석에서 피자를 먹던 기자도 끌어내려다 실패한 적도 있고, 경기 전 미국 국가 연주를 위해 초대한 지역 고등학교 밴드한테 고액의 입장권을 사라고 강요하는 등의 막장 행각을 선보여서 지역주민들과 언론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물론 나이몰리 구단주가 탬파에 메이저리그팀을 유치하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지역을 대표해서 솔선수범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는 공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그의 능력은 거기까지만이었고 구단주로서는 능력은 빵점이었다. 여기에 단장인 척 라마는 무능함의 극치로, 꾸준한 꼴찌의 보상인 드래프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위픽 지명을 하고 트레이드도 못하면서 팜을 개박살 내버렸다. 기껏 확장 드래프트로 영입한 바비 아브레우를 별 볼일 없는 유격수 케빈 스토커를 받고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시키는가 하면, 콜로라도에서 5년간 평균 3할의 타율에 세 번을 40 홈런을 넘긴 강타자 비니 카스티야를 트레이드해 왔지만, 2년 전 타율 0.319에 46 홈런을 치던 그는 2000년 탬파에서 타율 0.222/출루율 0.254/장타율 0.308을 찍었다. 장타율이 전성기 적 타율만도 못 나온 셈이었다. 이렇듯 성적에만 조급한 막장 짠돌이 구단주와 이런 구단주를 견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단장의 시너지 효과로 탬파베이는 창단 동기 애리조나처럼 돈을 퍼부어 강력한 팀을 만든 것도 아니고, 유망주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선수들을 충분히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한물 간 노장선수들에게 돈은 돈대로 썼다. 게다가 탬파 지역은 NFL 버커니어스를 위시한 미식축구팀과 올랜도 매직이 인근 해 있는 NBA가 강세인 지역. 그래서 마켓도 작은데 늘 지고 있으니 꿈도 희망도 없는 팀이었다. 거기에 NHL 라이트닝이 뜬금없이 스탠리컵을 우승하면서 그쪽으로 팬덤이 빠져나간 건 덤이다. 그리고 후술 할 것처럼 홈구장트로피카나 필드의 입지도 최악이라서 관중 동원에 악영향을 미쳤고, 이는 탬파베이가 도시 인구와 광역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스몰 마켓이 되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탬파가 미국을 대표하는 휴양도시이기 때문에 선수생활 말년의 왕년의 스타들이 마지막으로 뛰는 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웨이드 보그스가 대표적인 선수로 1999년 탬파베이에서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해 탬파베이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 그 외에 약물로 악명 높은 호세 칸세코, 탬파 출신으로 양키 왕국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티노 마르티네즈 등이 거쳐갔다. 2003년에 탬파 출신의 대스타였던 루 피넬라 감독을 사상 초유의 선수, 감독 트레이드로 영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2004 시즌 중반 갑자기 연승을 몰아치더니 '잠깐' 5할 승률을 달성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탬파베이 역사상 거의 최초. 그러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빅 3과의 격차는 여전히 줄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해에 처음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재끼고 4위를 기록했다는 것. 팀 역대 최초의 70승으로 창단 이후 10년 중 제일 높은 성적이다. 물론 이듬해 67승으로 다시 5등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 즈음 젊고 유망한 타자 여럿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칼 크로포드, 로코 발델리,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이 주목받았고, 팀의 4번 타자 오브리 허프가 건재했으며, 대형 유망주 B.J. 업튼도 2004년 처음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타자들 대부분이 성장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다는 것. 3년간 유틸리티로 굴리던 오브리 허프는 결국 2005년 OPS 8할이 무너지는 성적하락을 겪고, 2006년 페이스가 올라올 즈음 해서 트레이드되었다. 자니 곰스는 2005년 101경기에서 20 홈런을 기록하고 타출장 3/4/5에서 타율과 출루율만 살짝 모자란, OPS 9할을 기록하는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기록하며 적잖은 기대를 받았으나, 2006년부터 급속도로 공갈포화가 진행되면서 더 성장하지 못했고 여기에 마이너에서부터 좋지 않았던 수비력도 발전이 없는 채 정체되며 좌투 전문 플래툰 요원 및 대타요원으로 자리 잡는 데 그쳤다. 호르헤 칸투는 2005년 2루와 3루를 오가며 28 홈런에 OPS 8할대를 기록해 차세대 거포로 기대받았지만, 19 볼넷/83 삼진이라는 극악의 선구안이 발목을 잡으며 2005년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린 채 정체되며 2007년 시즌 중 트레이드, 2008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29 홈런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로코 발델리는 2003년 데뷔시즌부터 건실한 중견수 수비와 적절한 타격능력으로 2년간 탬파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이탈하더니 재활 도중 팔꿈치까지 다쳐 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으며 1년 반을 날렸고 복귀 이후에도 갖은 병치레로 커리어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탬파베이의 주요 유망주 타자들 중 성공적인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간 선수는 칼 크로포드 한 명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타선은 그래도 유망주라도 나왔지, 투수진은 그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4년까지는 선발진에 믿을 투수 하나 없었고, 그나마 2005년 스캇 카즈미어가 선발진에 자리를 잡고 뛰어난 구속과 구위를 바탕으로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받은 정도. 그나마도 카즈미어를 제외하면 괜찮은 선발은 없었고, 불펜도 데니스 바에즈의 2년간의 활약을 빼면 전반적으로 불안했다. 2005 시즌이 끝나고 만악의 근원 나이몰리 구단주가 물러나고 월가 출신의 스튜어트 스턴버그가 새 구단주로 들어섰고, 실버맨 사장,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 조 매든 감독 체제로 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7년에 전체 3 픽, 전체 1 픽으로 팀의 투타 기둥이 될 에반 롱고리아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지명한 것을 비롯, 팜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꾸준히 팀 타선을 리드한 칼 크로포드에 더하여, 저니맨이 되면서 잊혀지던 카를로스 페냐와 메이저에 적응하지 못하던 유망주 B.J. 업튼이 완벽한 활약을 해주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문제는 여전히 무너져있는 투수진이었고 10년 중에서도 최악의 투수력을 기록했다. 제임스 실즈 스캇 카즈미어의 원투펀치는 구축되었지만 5점대 후반 방어율의 에드윈 잭슨과 앤디 소낸스타인이 3-4 선발을 지켰다. 5 선발은 케이시 포섬, 제이슨 해멀,  J.P. 하웰, 서재응. 여기에 불안한 수비진이 투수진에 더욱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에 프리드먼은 결단을 내려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 픽인 델몬 영을 내주고 선발 유망주 맷 가자를 받아오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미네소타와의 3:3 트레이드를 단행한다. 탑 유망주를 교환한 흔치 않은 트레이드인 만큼 결과를 놓고 예측이 분분했는데, 결국 이 트레이드는 탬파베이의 완전한 승리가 된다. 맷 가자가 기존의 실즈, 카즈미어와 강력한 3 선발을 구축했고, 델몬 영과 브렌던 해리스 두 마이너스 수비수가 나가고 들어온 유격수 제이슨 바틀렛도 뛰어난 수비와 쏠쏠한 타격으로 좋은 활약을 했다. 2008년 구단명을 데블 레이스(Devil Rays)에서 그냥 레이스(Rays)로 바꾸었다. 여전히 가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의 뜻도 가지고 있어 팀 로고 등에 빛, 섬광 등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참고로 구단 명을 바꿀 때의 슬로건이 "악마(Devil)를 쫓아내라!". 상당히 재치 있다.그렇게 레이스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고, 2008년 이전 10년 동안 70승이 최다승이었던 팀이 이후 6년 동안 5번의 90+승을 만들어 낼 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 못한 2009년에도 84승으로 5할 승률을 넘겼다. 2014년 이후로도 90승을 두 차례 기록하고 2020년에는 단축 시즌 가운데 60경기 40승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를 기록하는 등, 말 그대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월드 시리즈도 2008년 2020년 두 차례 진출하기도. 이 기간 동안 탬파베이보다 더 많은 90승 이상 시즌을 기록한 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8번) 한 팀뿐이며, 탬파베이와 똑같이 7번의 90승 이상 시즌을 기록한 팀도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두 팀뿐이다. 특히 2018년은 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 30개 구단 중 가장 낮은 페이롤로 90승에 성공하는 등, 스몰마켓 구단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08 시즌에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제치고 97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간 차곡차곡 유망주들을 모으고 팜 시스템을 다진 것이 드디어 결과로 돌아왔으며, 월가 투자은행 출신인 신임 단장 앤드류 프리드먼과 믿음의 야구를 구사하고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인 조 매든 감독의 지휘 하에 끈끈한 팀 조직력을 다진 덕이었다. 또한 막 인기를 얻어가던 세이버 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팀에 적용하며 수비 시프트프레이밍, 주루 등 저평가된 가치를 통해 새로운 머니볼을 구축해 나갔다.2007년에 가능성을 보인 타선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 반면, 2007년에 여유롭게 전체꼴찌였던 투수진은 2008년 AL 평균자책점 2위를 찍는, 믿기지 않는 전력상승을 실현했다. ALCS에서는 동부지구 우승 경쟁을 했던 보스턴을 제치고 월드시리즈 진출하는 기적을 일궜다. 비록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져 기적은 멈추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인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메이저리그 29위의 페이롤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2009 시즌에는 84승 78패를 기록해 5할 승률 이상을 유지했다. 물론 시즌 중 두 자릿수 연패를 찍으면서 리그 우승은 양키스에게,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는 레드삭스에 밀려 지구 3위에 머물렀지만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인 칼 크로포드를 비롯한 에반 롱고리아데이비드 프라이스맷 가르자스캇 카즈미어 등의 대다수의 저비용 고효율의 젊은 선수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전년도의 지구 우승은 우연이 아님을 보여줬다. 젊은 선수들을 무리하지 않는 가격으로 장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갑툭튀 한 팀이 몰락으로 이어지는 재정난과도 거리가 먼 팀 운영을 했다. 다만 향상된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장의 여러 문제로 관중 동원은 여전히 문제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2010 시즌에는 96승 66패로 AL 동부 1위이자 AL 전체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이은 ML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이후 ALDS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격돌하였으나 클리프 리의 원맨쇼에 관광당하며 시리즈 2승 3패로 석패.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016년 시즌 중반까진 그래도 선전하다가 6월 16일~7월 16일 동안 연승 없이 11연패, 8연패를 포함하여 3승 24패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결국 68승 94패로 압도적인 지구 꼴찌, 메이저리그 공동 2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며 데블레이스 시절이던 2007년 이후 처음으로 70승 미만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타선이 살아나지 못하고 선발진마저 사이영상 후보로 주목받던 크리스 아처가 초반부터 흔들리며 팀컬러와 맞게 홈런머신이 되며 패를 적립하기 시작, 후반기에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시즌은 끝나 갔고 결국 200이닝은 넘겼으나 9승 19패를 기록하며 최다패의 멍에를 썼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2선 발인 제이크 오도리지가 10승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했고, 알렉스 콜로메 브래드 박스버거의 부상을 계기로 보직을 옮긴 것이 히트를 쳐 37세이브로 단숨에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로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 2017년 시즌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는 시즌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에반 롱고리아의 트레이드 후 첫 시즌. 불안한 선발 뎁스로 우려를 샀으나 오프너 전략을 위시한 참신한 운용으로 오랜만에 90승 달성에 성공했다. 2019년 시즌 작년 시즌의 좋은 기세를 이어나가며 2013년 이후 6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2020년 시즌 코로나19로 인해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진행된 시즌. ML 전체 승률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이후 12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2021년 시즌 때는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문제로 주축 선발 투수 두 명을 내보냈지만, 탄탄한 뎁스와 불펜진의 활약으로 2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2022년 시즌 타선의 잦은 부상으로 고생한 시즌. 마운드의 힘으로 와일드카드 획득에 성공했지만, 결국 물타선이 발목을 잡아 포스트시즌은 조기에 마감했다.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개요 

탬파베이 레이스(Tampa Bay Rays)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즈버그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다.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이다. 1998년에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로 창단하였으며, 신생팀으로, 원래 이름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Devil Rays)로 플로리다 인근 해에서 잡히는 쥐가오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후 2007년 11월 레이스(Rays)로 팀명을 변경하고 상징물도 데블레이(쥐가오리)에서 플로리다 전체를 환히 비추는 햇빛으로 바꿨다. 2007년 2월부터 2009년 1월까지 한국인 메이저리거 류제국선수의 소속팀이었다. 초기에는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현재와 같은 팀명으로 바꾼 첫해인 2008년 시즌 창단 첫 지구 우승을 차지하였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3승 1패로 눌렀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도 보스턴 레드삭스를 4승 3패로 제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1승 4패를 당해 월드시리즈 우승은 좌절됐다. 2011년 시즌에는, 9월 초 AL 와일드카드 1위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무려 9.5경기차가 났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7점 차를 뒤지던 경기를 12회 연장 접전 끝에 에반 롱고리아의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 9경기 차이를 뒤집고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확률 5%를 실현시킨 시즌이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팀의 포스트 시즌을 확정 짓는 홈런을 날린 건 역대 2번째, AL 리그에서는 역대 최초의 홈런이었다. 2013년 시즌에도 92승 71패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 텍사스 레인저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각각 꺾으며 포스트시즌 디비전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합계 3-1로 패하였다. 창단 후 신생팀들이 이래 그러하듯 10년간 부침을 겪었으나 앤드류 프리드먼이 단장으로 부임하고 2008년에 팀명을 바꾼 이 후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스몰마켓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유망주 랭킹도 항상 상위권에 오르면서, 빌리 빈 단장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함께 모범적인 스몰마켓 운영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파워를 맨파워로 이겨내 온 구단이지만 여건 자체는 메이저 리그 30 구단 중에서도 가장 답이 없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작은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어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평범한 구단의 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같은 지구의 엄청난 머니 파워를 지닌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매머드급 팀들과 경쟁해야 하는 데다, 만악의 근원으로 불리는 메이저리그 최악의 홈구장까지 거들고 있다. 객관적 여건을 봤을 때 날씨 이외에 팀 성적을 내기 위한 평균 이상의 요소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구단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팀 성적이 잘 나오더라도 팀 페이롤은 1억 달러는커녕 7~8천만 달러만 넘겨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2020년대 기준 S급 선수는 연평균 3천만 달러 이상, A급 선수는 연평균 2천만 달러 중반인 것을 감안하면 A급 이상 선수 외부영입은커녕 팜에서 키운 A급 이상 선수 붙잡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페이롤이다. 덕분에 매 시즌 MLB 페이롤 순위를 살펴보면 레이스는 거의 항상 최하위나 그 근처에 위치해 있다.이러다 보니 구단 팜에서 뛰어난 선수가 나와도 FA 자격을 얻었을 때 붙잡는 건 언감생심이며, 따라서 팀에서 가능한 오래 써먹으려는 선수는 콜업을 최대한 늦추거나 가능성이 보일 때에 일찌감치 장기계약으로 묶어서 일반적인 서비스 타임보다 더 많이 기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다만 장기계약 여부와 무관하게 팀 페이롤에 부담이 가거나 계약 종료가 임박할 경우 이런 선수들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아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편. 대신 후술하듯이 돈이 없는 대신 육성에 집중하기 때문에 선수 육성에 있어서는 빅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성과를 보여주며, 여기에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섬과 동시에 상당히 꼼꼼하게 칩을 선택하기 때문에 트레이드를 말아먹은 사례도 드물어서 이것이 육성 노하우와 합쳐지면서 상당한 성과를 이끌어낸다. 이렇게까지 돈이 적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연고지인 탬파 일대 자체의 문제다. 탬파를 비롯한 플로리다 주 자체가 워낙 풋볼의 인기가 강하다 보니 야구 인기가 상대적으로 덜한 편. 이 때문에 탬파와 일대 광역권의 많은 인구수와 수요에도 불구하고 기대 관중수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근처에 위치한 마이애미 말린스도 함께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 두 번째 이유는 사실 앞선 이유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인데,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의 애매한 위치로 인해 관중이 제대로 모이지 않는다.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케빈 포레스트 캐시 (Kevin Forest Cash) : 미국의 야구인으로 現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으로 오프너 전략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플로리다  탬파에서 태어난 케빈 캐시는 플로리다 주립대학교로 진학했고 대학 리그에서 맹활약을 했지만 부상을 당하면서 1999년 미지명되었고 이후 자유계약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입단했다. 2002년 빅리그에 콜업되었고 커리어 대부분을 백업 포수로 지냈다.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이 빛났는데 2007년 팀 웨이크필드의 전담포수 덕 미라벨리가 더블헤더 1차전 도중 부상을 당하면서 급하게 콜업되어 오타와에서 보스턴까지 날아와 경기를 뛴 적이 있으며 우승 반지도 얻은 뒤 2008년 팀 웨이크필드 경기 때 덕 미라벨리에 이은 포수로 나오기도 했다. 이후 뉴욕 양키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다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뛴 뒤 2011년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 2012년에는 1년간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어드벤스 스카우터로 잠시 일했었다. 2013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불펜 코치로 선임되었고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5년 시카고 컵스로 자리를 옮긴 조 매든 감독의 후임으로 면접 끝에 합격하면서 탬파베이 레이스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선임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였다. 심지어 최연소 신임 감독에 탬파베이는 5년 계약을 안겨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2020년 현재에도 역대 최연소 감독으로 기록되고 있다. 처음 감독 선임 당시 그의 코치였던 로코 발델리가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으로 만 37세의 나이로 부임하여 시즌 막내 감독이 되었다. 시즌 종료 후 2020년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21 시즌 보스턴과의 디비전 시리즈에선 1:3으로 패배하며 허무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필승조들을 지나치게 아낀 투수 교체와 안타를 단 한 번도 치지 못한 브랜든 라우를 맹목적인 믿음으로 상위타순에 꾸준히 선발로 내보낸 걸로 현지에서 비판받았다. 시즌 종료 후 2021년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메리칸 리그로 한정하면 역대 최초, 내셔널 리그까지 포함하면 2004년과 2005년에 연속 수상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바비 콕스에 이어 역대 2번째로 올해의 감독상을 2년 연속 수상한 감독이 되었다. 구단 역사가 짧은 데다가, 극단적으로 가난한 팀 특성상 선수가 팀에서 어느 정도 활약하다 보면 트레이드로 떠나기가 십상이라 마땅히 영구결번감이 나오지 않았다. 보그스는 영구결번 자체에 논란이 많고, 짐머는 선수로서 결번된 것이 아니라서 사실상 레이스 소속 선수로서의 활약만으로 영구결번이 된 선수는 없는 셈. 그나마 염가에 오랫동안 좋은 활약을 하며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았던 에반 롱고리아의 3번이 영구 결번 후보다. 한편 2022년에 베테랑 위원회 투표를 통해 프레드 맥그리프의 HoF 입성이 결정되었는데, 맥그리프가 탬파베이 모자를 쓰고 명전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 맥그리프가 탬파베이 모자를 쓰고 HoF에 입성하게 된다면 레이스 구단에서 맥그리프의 29번을 영구결번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맥그리프가 데블레이스 모자를 쓰고 명전에 간다면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레이스 프랜차이즈 최초로 탬파베이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사례가 된다. 그러나 맥그리프는 빈 모자를 쓰고 가기로 결정하면서 영구결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12. 웨이드 보그스(Wade Boggs) (1998~1999): 고향팀인 데블레이스에서 말년을 뛰며 3,000안타를 달성했는데, 문제는  데블레이스에서 뛴 커리어가 워낙 짧아서 성적만 가지고는 영구결번을 받을 만한지에 대해서 물음표가 붙는데, 그래도 신생팀 레이스가 초반에 리그에 빠르게 자리를 잡는 데 당대의 슈퍼스타였던 보그스의 합류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인 만큼 여기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허나 보그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게 되자, 영구결번 및 명예의 전당 입성 모자를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문제가 커졌다. 이에 보그스는 명예의 전당 입성 모자를 베테랑 위원회의 선택에 맡기겠다고 밝혔고, 결국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했다. 그리고 이 사례 이후로 선수 본인의 의사와 무관히 베테랑 위원회가 선수의 동판에 새겨질 모자 로고를 권고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그가 탬파에서 친 안타수는 보그스 치고 심히 저조한, 고작 210안타, 즉 전체 안타의 7% 정도 기록했다.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전 구단 영구결번 66. 돈 짐머(Don Zimmer) (2004~2014): 탬파에서 11 시즌 간 기술 고문으로 활동해 왔고, 2014년 시즌 도중에 작고하자 구단 측에서 추모의 의미로 영구결번을 지정했다. 참고로 66번은 그가 달았던 등번호가 아니다. 짐머가 활동해 온 66년(1949~2014)의 야구인생을 기념하는 뜻으로 영구결번이 된 것. 2023 시즌을 앞두고 구단 창단 25주년을 맞아 구단 명예의 전당을 론칭한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최초의 3인으로 돈 짐머웨이드 보그스칼 크로포드가 헌액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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