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뉴욕 양키스 구단의 역사, 개요, 감독 및 선수단 소개

by 결심도전 2023. 6. 13.

뉴욕 양키스 구단의 모자 로고 및 구단 로고

뉴욕 양키스 구단의 역사 

1901년 아메리칸 리그를 만든 벤 존슨 회장은 원래 뉴욕에도 팀을 만들려 했으나, 내셔널 리그  뉴욕 자이언츠의 반대 때문에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라는 명칭으로 팀을 창단하였는데 이게 뉴욕 양키스의 시작이다. 팀 창단을 주도한 선수 존 맥그로는 구단주와 감독까지 1인 3역을 도맡아 거친 야구를 추구했지만 1902년에 리그 측이 거친 플레이를 규제함에 따라 이웃 뉴욕 자이언츠로 옮겼고, 이 과정에서 오리올스 선수들을 몰래 세트로 그 팀에 데리고 가면서 논란이 되자 뉴욕으로 연고를 이전하는 것에 관한 투표를 진행했다. 이에 자이언츠를 뺀 총 15개 구단이 찬성하는 한편, 팀 소유권도 전 뉴욕시 경찰서장 윌리엄 스티븐 디베리와 사업가 프랭크 패럴에게 팔려 뉴욕으로 연고이전해서 '뉴욕 하이랜더스'로 바꿨다. 1913년에 원래 하이랜더스였던 팀 명칭을 뉴욕 프레스 기자가 양키스라고 부르면서 오늘날의 뉴욕 양키스라는 팀 명칭이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키스의 그 유명한 NY 로고가 탄생하고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의 원형이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자신들만의 홈구장도 없어서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즈를 빌려 쓰는 처지가 계속되었다. 성적도 좋지 않아서 리그 2등을 세 번 한 것이 전부였다. 그중 1904년에는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폭투 하나 때문에 2위에 그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당시 양키스의 유명 선수는 '잭 체스브로'로, 그는 20세기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41승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고 있었지만 월드시리즈 진출자가 가려지는 마지막 등판 경기에서 치명적인 폭투를 저질러 월드시리즈 진출 기회를 놓쳤다. 이후 NL의 터줏대감 뉴욕 자이언츠가 AL과의 시리즈를 거부해 버려 아예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아서 의미가 없어지긴 했다. 그러던 그들에게, 제이콥 루퍼트라는 구단주와 밀러 허긴스라는 감독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서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새 구단주 루퍼트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인물이었고, 새 단장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드 배로 를 영입했다. 배로는 보스턴의 속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었고, 마침 극장 사업에서 실패하면서 손해를 본 보스턴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의 사정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돈으로 과감하게 보스턴의 선수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선수뿐만 아니라 루 게릭과 계약한 걸로 유명한 스카우트 폴 크리첼도 레드삭스에서 영입했다. 한편 배로를 단장으로 영입하기 전에도 레드삭스에서 핵심 선수 한 명을 데려왔는데, 바로 왼손 투수 타자인베이브 루스였다. 당시 보스턴은 루스의 자질을 과소평가하였고, 보스턴의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가 펜웨이 파크 건설 자금 융자 조건을 붙여 12만 5000달러에 양키스에 트레이드를 시키게 된다. 루스의 뉴욕 입성은 이후 양키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으로 등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12만 5천 불 이상의 연봉을 받은 선수가 나온 것은 루스의 트레이드 이후 무려 46년 이후였다. 루스의 트레이드는 보스턴에 어마어마한 비극을 안겨다 줬고, 보스턴이 2004년 월드시리즈까지 우승까지 무려 85년 동안 우승하지 못하면서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루스의 홈런포는 미국인들을 열광시켰고, 한 시즌 60홈런이라는 대기록도 이때 나왔다. 그리고 루스만이 아니라 보스턴의 주축 선수들인 웨이트 호이트, 허브 페녹, 칼 메이스 같은 선수들도 일제히 영입하면서 단숨에 팀 전력이 강해졌다. 여기에 루 게릭이라는 최고의 홈런 타자와 그들의 앞뒤에 포진한 외야수 얼 콤스, 밥 뮤젤과 2루수 토니 라제리, 아울러 빌 디키라는 명포수까지 가세한 데다가 밀러 허긴스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시너지를 일으켜 팀 전력은 단숨에 정상을 넘보는 수준으로 급상승했다. 1921 및 1922 시즌에 월드시리즈에서 두 차례 이웃 팀 자이언츠에게 졌으나, 관중 동원에서 밀린 자이언츠가 홈구장을 비워달라고 요구하자 1923년에 미국 최초의 3층짜리 신축 구장 '양키 스타디움'을 세웠다. 1925년 5월 1일에 허긴스 감독은 신인 1루수 루 게릭을 대타로 기용시켜 새 스타의 등장을 알렸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가장 극명한 말이 바로 살인 타선으로 1927년에 정점에 달했다. 1927년 양키스는 154경기에서 110승 44패 승률. 714를 기록하여 당시 신기록을 세웠고, 페넌트 레이스에서 하루도 1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2위와 19경기 차로 마감한 뒤 월드 시리즈까지 4:0으로 끝냈다. 특히 홈런 생산력이 최고점에 도달해서, 루스는 60 홈런, 게릭은 47 홈런을 쳤다. 1927년에 루스와 게릭 두 명이 기록한 107 홈런보다 많은 홈런을 기록한 팀은 뉴욕 자이언츠뿐이었고 그나마도 109 홈런으로 불과 2개 차이였다. 양키스 전체 홈런 수는 158개로 그해 메이저리그 홈런의 약 17%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그리고 게릭은 175타점을 기록했는데 이것도 기존 루스의 171타점을 넘은 당시 신기록이었다. 그 외 주축 선수들이 모두 건재했고 에이스 웨이트 호이트, 1번 타자 얼 콤스 등이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면서 아메리칸 리그와 월드 시리즈를 평정했다. 이 1927년 팀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강 전력으로 평가되며, 야구뿐 아니라 미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팀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드라마, 영화 등 각종 대중매체에서도 1920~30년대 양키스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연도로서 많이 언급되는 편인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대표적이다. 루스가 팀에 합류한 1920년부터 팀을 떠나는 1934년까지 15년간 양키스는 리그 우승 7번, 월드 시리즈 우승 4번을 차지했고, 이 시기 팀 역사상 첫 리그 우승과 월드 시리즈 우승이 이뤄졌다. 그 사이 허긴스 감독은 1929년 시즌 도중 숨졌고, 이후 아트 플레처와 밥 쇼키를 거쳐 1931년에 전 시카고 컵스 감독 조 매카시가 부임해 팀의 기강을 다졌다. 그는 클럽하우스 내 카드놀이 금지, 이동 중 정장 착용, 경기 전 면도 등 새 규칙을 마련해 프로야구 선수다운 사명감을 불어넣도록 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뉴욕의 2인자, 3인자 신세에서 벗어나 뉴욕 일인자이자, 전미의 인기 팀이 되었다는 점. 물론 이는 루스의 공이 가장 컸고, 그의 홈런으로 인해 몰려든 관중 수입으로 지은 양키 스타디움은 '루스가 지은 집(The House That Ruth Built)'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루스가 팀을 떠나고, 명포수 빌 디키가 은퇴한 후에도 매카시 감독의 통솔 하에 양키스의 전성시대는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최고의 인기 팀으로 거듭나면서 드래프트가 없던 시기 우수 선수 확보가 훨씬 더 쉬웠던 것이다. 우수한 선수에 대해서는 끝까지 쫓아다니면서 기어이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루스는 떠났지만 여전한 위력을 보여준 루 게릭이 있었고, 1934년 마이너리그 더블 A 팀 샌프란시스코 실즈에서 건져 올린 조 디마지오의 활약도 컸다. 하지만, 루 게릭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월드 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이후 루게릭병으로 인해 비운의 은퇴를 해야 했고, 그 뒤 양키스를 이끄는 책무는 디마지오의 것이 되었다. 비록 디마지오는 성적에 있어서는 동시대의 라이벌 테드 윌리엄스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자신도 빼어난 선수였고, 56경기 연속 안타와 같은 이슈도 만들어 냈다. 이는 테드 윌리엄스가 세운 한 시즌 4할대 타율과 함께 메이저리그의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팀으로서 양키스는 여전히 가장 강력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디마지오는 잠시 팀을 떠났고, 팀 성적도 주춤했지만 전쟁 후에도 여전히 양키스는 강했다. 디마지오가 본격적으로 데뷔한 1936년부터 그가 은퇴하는 1951년까지 양키스는 리그 우승 11번과 월드 시리즈 우승 10번을 차지했다. 이 시기 월드 시리즈에서 진 것은 딱 한 번, 1942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당한 패배뿐이었다. 디마지오의 은퇴 후, 미키 맨틀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까지 팀을 상징한 것은 '노교수(Old Professor)'라고 불린 케이시 스텡겔 감독과 명포수 요기 베라였다. 요기 베라는 1950년대 전성기를 맞아 리그 MVP를 세 차례 차지했고, 또 다른 명투수이자 월드 시리즈의 사나이인 화이티 포드와 호흡을 맞추며 팀의 전성 시대를 이어갔다. 스텡겔 감독 역시 전력을 꾸준히 유지시키면서 디마지오의 은퇴 이후, 1950년대 중반 월드 시리즈 우승 4번과 리그 우승 6번을 기록했다. 양키스는 강한 전력을 구축하면서 1950년대 10 시즌 중 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리그 우승을 기록했고, 이때의 활약상으로 인해 스텡겔 감독과 요기 베라, 화이티 포드는 모두 쿠퍼스타운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1950년대 중반부터 이미 팀의 붙박이 중견수로 활약을 펼치던 미키 맨틀이, 본격적으로 기량을 만개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베이브 루스에 거의 근접한 성적이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결국 루스를 넘는 데는 실패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1960년에 스탠젤 감독이 물러나면서 랄프 후크가 감독직을 넘겨받았고, 요기 베라의 노쇠화 이후 팀의 타선은 맨틀 혼자서 이끌어 갔지만, 또 다른 강타자 로저 매리스의 영입 이후 팀 타선은 더 강해졌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좋았지만 문제는 언론. 뉴욕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였던 맨틀에게는 뉴욕 언론이 우호적이었지만, 매리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1961년, 매리스가 베이브 루스의 60홈런 기록을 결국 깨뜨리면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어쨌든 이 시기는 1920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메이저리그를 제패한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의 마지막 전성기였다. 살인 타선과 디마지오, 베라와 같은 스타들을 계승한 맨틀과 매리스 쌍포는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리그 5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월드 시리즈에서는 그리 강력하지 못해서 1961년과 1962년 두 차례 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1965년에 미네소타가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양키스의 시대는 완전히 끝나게 된다. 양키스가 암흑기에 빠져든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전자는 1964년에 구단주가 댄 토핑&델 웹에서 CBS로 바뀌었고, 후크 감독이 단장으로 승진하자 감독직엔 요기 베라가 선임됐다. 양키스의 명성에 의존해 방송 사업에서 돈을 벌어보려던 방송국 CBS는 장기적인 투자 대신에 단기적인 성적에 집착했고, 그것은 오히려 팀에 큰 독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인수 첫 해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월드 시리즈 우승에 실패하자 감독인 요기 베라를 경질한 것이 그 사례이다. 1966년에 랄프 후크 단장이 감독으로 복귀해 7년을 버티긴 했으나, 이런 우승에 대한 단기 집착은 결국 장기적인 플랜을 갖추지 못하면서 결국 팀의 안정적인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1967년 숙적 보스턴 레드삭스가 21년 만에 WS에 나가고, 1969년 같은 리그의 메츠가 WS에서 우승하면서 잠깐 타격을 입기도 했다. 더 중요한 원인은 시대의 변화에 뒤쳐졌다는 것. 1965년에 새롭게 도입된 드래프트 제도로 인해 양키스는 과거처럼 인기 팀과 강팀의 명성에 의존해서 스타급 유망주들을 입도선매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전력 보강이 그리 신통치 않았고, 신인 수급에서 이제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게 된 이상 그리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울러 인종주의도 문제였다. 비록 흑인 선수 도입에 있어서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보다는 빠른 편이었지만, 스카우트나 팀 수뇌부에 남아 있었던 인종주의로 인해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실패했다. 이 암흑기는 1972년에 클리블랜드의 선박업자 조지 스타인브레너 팀을 인수한 후 끝날 기미를 보이게 된다. 그는 1973년에 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사장 게이브 폴을 사장 겸 단장으로, 1974년에는 친정팀 출신 빌리 마틴을 감독으로 각각 불러 암흑기를 끝낼 단초를 마련했다. 급기야 1976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접전을 펼친 끝에, 12년 만에 다시 월드 시리즈를 밟았다. 다만 이때는 당대 최고의 강타선인 '빅 레드 머신'을 구축한 신시내티 레즈에게 팀 역사상 처음으로 0:4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1977년 1978년에는 LA 다저스를 2년 연속 누르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제 다시 전성기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양키스는 이 81년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하고 이후 80년대에 최악의 암흑기를 겪으면서, 베이브 루스 입단 이후 매 10년 단위의 세대마다 우승을 차지하는 기록이 끊기고 말았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우승을 차지했었기 때문에 81년 월드시리즈만 이겼다면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각 세대마다 최소 1번은 우승했다는 기록이 2000년대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결국 양키스는 이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PO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한 번도 승률 5할을 넘지 못하는 최악의 암흑기를 겪었고, 특히 1990년에는 67승 95패 .414의 승률로 1966년 이후 두 번째로 꼴찌를 차지하는 수모를 당했다. 심지어 이 기간에 동향 팀인 뉴욕 메츠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1988년에도 내셔널 리그 최고의 성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양키스 팬들이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또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도 1986년 월드 시리즈 준우승, 1988년, 1990년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죽어난 양반이 이 시기의 팀의 주장이었던 돈 매팅리. 매팅리는 양키스 주장 중에서 유일하게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을 뿐 아니라, 아예 월드 시리즈 한 번을 못 밟아본 주장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말 외에는 20년 가까이 우승하지 못했고 성적도 좋지 못했다. 1992년부터 5할 승률을 회복하기 시작해 리그가 3개 지구로 개편된 1994년에 오랜만에 지구 1위를 달렸지만 이 해에는 파업으로 포스트시즌이 열리지 못했다. 마침내 1995년 와일드카드로 PO에 오르기 시작하더니 1996년 월드 시리즈에서 먼저 2패를 하고 내리 4 연승하면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누르고 18년 만에 우승에 성공해 폭발적으로 상승 일로를 걸었다. 다시 돌아온 명가의 유니폼을 입고 싶어 하는 선수들은 많았고, 예전과 달리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도 팀에 심하게 개입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는 조 토레가 기가 막히게 그의 비위를 맞춰준 탓도 컸지만. 어쨌든 로저 클레멘스도 영입하고, 기존의 선수들도 지켜내면서 전력을 강화한 그들은 마침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월드 시리즈 3연패에 성공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에는 브라이언 캐시먼 부단장이 수석부사장 겸 단장으로 승진했고, 2000년에는 사장제를 부활시켰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지구 우승은 차지했고, 2007년에는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문제는 2003년을 빼고 월드 시리즈에 오르지 못했고, 더욱이 이 시기에 보스턴 레드삭스가 오랜 밤비노의 저주를 극복하고,  차례나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특히 2004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먼저 3연승 후 4연패로 자멸, 레드삭스에게 86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허용하는 치욕을 맛본다. 결국 이 때문에 2007년을 끝으로 조 토레와도 결별하게 되었다. 정작 문제는 2008년. 늘 그랬듯이 동부 지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만 신경 쓰면 될 줄 알았는데,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밀려서 지구 3위로 내려앉은 것이다. 새 구장으로 이전한 2009 시즌 초에는 슬로 스타터인 CC 사바시아와 마크 테셰이라의 부진과 타선의 침체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에 8연패를 당하고, 최악의 격전 지구인 동부 지구에서 보스턴과 탬파베이에 밀려 3위까지 떨어지는 등 부진을 보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부터 타선의 파괴력이 증대되고 시즌 초 부진하던 테셰이라 역시 5월을 기점으로 살아나기 시작하였고 끝없는 질주를 시작하며 앞선 팀들을 근소하게 제치고 1위로 복귀했다. 후반기 첫 라이벌전인 레드삭스 3연전을 승리하며 1위 체제를 강화하더니 레드삭스전 9승 1패로 상대 전적도 9:9로 맞추고 최종 103승을 기록하며 지구 우승을 확정 지었다.포스트시즌에서는 사바시아-버넷-페티트의 막강 스리 펀치와 마침내 포스트시즌 울렁증을 떨쳐버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맹활약에 힘입어 미네소타 트윈스, LA 에인절스를 연파하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는다. 홈에서 치른 1, 2차전에서 로드리게스가 8타수 무안타 6 삼진으로 다시 부진, 테셰이라 역시 정규 시즌에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1승 1패에 그쳤지만, 이후 마쓰이 히데키의 맹활약을 앞세워 4승 2패로 27번째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2011 시즌을 대비하는 스토브 리그에서는 제국답지 않게 조용했다. 별다른 전력 보강은 없었고, 지구 라이벌 탬파베이 레이스의 마무리 라파엘 소리아노를 셋업맨과 포스트 리베라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한 정도에 그쳤다. 이로 인해 양키스의 선발진이 상당히 불안해졌다. 2011 시즌이 시작되고 휴즈가 정신 못 차리자 급한 마음에 영입해 뒀던 왕년의 에이스들인 프레디 가르시아 바톨로 콜론을 로테이션에 올렸는데, 이게 의외로 성과가 좋게 나서 근근이 선발진을 꾸려갔다. 따라서 트레이드 데드라인 전까지 선발 영입을 하지 않을까 했는데, 놀랍게도 어떤 영입도 없었다. 일단 사바시아가 건재하고, 휴즈의 부활을 기대한 듯. 또 이반 노바라는 신예도 터진 상황이라 당장 급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불안했던 시즌 초 예상과는 다르게 결국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타이틀을 따 내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5차전 접전 끝에 2승 3패로 ALDS에서 탈락했다. 2015년 시즌 숙적 보스턴 레드삭스를 4 대 1로 물리치면서 와일드카드 진출을 확정 지었고, 아울러 아메리칸 리그 소속 팀 중 최초로 1만 번째 승을 달성하는 기록도 덤으로 세웠다. 확실한 이변이 없는 한,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와일드카드 단판 승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와일드카드를 따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한때 여유 있게 지구 선두를 달렸던 상황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드라인 때 토론토가 적극적으로 전력 보강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는데 이것이 정규 시즌 지구 우승 실패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양키스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소속 지구가 더 이상 만만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조지 스타인브레너 타계 이후, 나머지 팀들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강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템파베이 레이스 같이 하향세를 겪는 팀도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아직까진 조건만 맞고 충분한 투자가 이뤄진다면 얼마든지 강팀으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이미 보여줬고, 블루제이스나 오리올스 역시 구단이 마음만 먹으면 강팀으로 만들 수 있는 여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양키스의 앞날은 그야말로 암울한 미래화가 도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18, 2019, 2020 시즌에는 부족한 투수력이 패인이었지만, 투수력이 살아난 이번 시즌에는 타선의 폭락으로 망했다. 지난 여러 시즌 간의 폭발적인 공격력은 어디로 가고 시즌 내내 애런 저지와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이끄는 상위타선 이외에는 모두 버리는 타선으로 전락했다. 특히나 전반기에는 저지 혼자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8월 동안 완전히 침체된 타선에 시즌 내내 부진하던 오도어가 홀로 3할을 치며 버텼고. 결국 9월에는 타선이 부활에 13연승을 이끌었다. 문제는 그 이후 13경기에서 되는 게 없는 성적을 기록, 2승 11패로 13연승 동안 벌어놨던 여유로운 게임차를 다 따라 잡혔고 이때부터 지구 우승은 사실상 날아갔다. 2022년 시즌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약했던 시즌이었다.사실 시즌 전 미흡한 선수단 보강으로 우승에 대한 의지가 있나 싶었지만 그러한 우려를 모두 뒤엎고 8월 전까진 리그 최강의 팀으로 올라섰다. 전반기에는 선발 로테이션은 잘 돌아가고 불펜은 막강하고 타격은 치는 대로 담장을 넘기는 등, 오버페이스를 감안해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하지만 후반기에는 타격은 애런 저지를 제외하고 식물타선으로 불펜은 믿을만한 된 롱릴리프 하나 없을 정도로 얇아졌다. 선발은 조던 몽고메리가 트레이드로 전력이탈, 트레이드로 데려온 프랭키 몬타스는 부진의 연속으로 감독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다가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 빠지게 되었고 제임슨 타이욘과 도밍고 헤르만은 한계를 드러내며 결국 네스터 코르테스 주니어와 게릿 콜만이 가장 꾸준했다. 정규시즌 중반까지 투타완벽했고 역대 최다승과 13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에도 도전했던 2022년 시즌의 양키스였지만 끝에서는 1-2점의 점수차조차도 버거워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며 탈락했다. 사실 올시즌 전엔 양키스가 전반기의 독주를 할 거라고, 지구 우승을 할거라고,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나갈 거라고 생각한 이들은 적었다. 2021년의 양키스는 시즌 막판의 스트가 아니었다면 포스트시즌은 커녕 30년째 이어져오던 5할 승률도 위태로웠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면에서 상상할 수 있던 베스트를 보여주며 최강의 팀이 되었다가 다시 지난해처럼 애매모호한 팀으로 돌아온 시즌이 되었다. 2009년 우승 이후 우승 문턱에도 다가서지 못하는 양키스에게 있어서 현재 양키스 구단 수뇌부들은 이들 강성 팬덤들에겐 '무능한 집단'으로 보이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근 몇 년 동안 양키스가 유난히 포스트시즌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왔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당했다는 점이다. 물론 전력상으로나 기세상으로나 일단 패배 자체는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만 막상 시리즈가 시작되니 압도적 실력차로 완벽히 패배당하며 양키스 팬들에게 어마어마한 굴욕감을 선사해 버렸고, 월드 시리즈 우승이 간절한 양키스의 현재 최종 목표는 휴스턴을 넘는 것이 되어버렸다.

뉴욕 양키스 구단의 개요 

MLB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 구단. 연고지는 뉴욕. 홈구장은 양키 스타디움. 팀명인 양키스는 뉴욕에 네덜란드계 이민자가 많은 데서 유래되었다. 월드 시리즈 우승 27회, 아메리칸 리그 우승 40회,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 20회, MVP 22회 등, MLB와 야구계를 넘어서 전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손꼽힌다. 우승 횟수 27회는 2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11회)와 격차가 상당한 최다 기록이고 미국 4대 스포츠를 통틀어도 최다 기록이다. 우승 기록에 걸맞게 아메리칸 리그 소속 팀 중에서 2022년 기준으로 유일하게 10,000승을 달성한 팀이기도 하다. 통산 승률 역시 0.570으로 메이저리그 30팀 중 1위이다. 창단 이후 통산 121 시즌 동안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단 21 시즌뿐인데, 특히 1926년부터 1964년까지 무려 39년 연속 5할을 찍은 적이 있으며, 최근 5할 승률에 실패한 시즌은 1992년으로, 그 이후 2022년까지 30년째 5할 승률을 달성하고 있다. 그 말은 즉슨 브라이언 캐시먼 체제에서 5할 실패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 100승 시즌도 무려 21 시즌으로 2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9 시즌)보다 2배 이상 많다. 그에 반해 반대로 100패 시즌은 단 2번 있었는데, 각각 1908년, 1912년으로 양키스라는 이름을 쓰기 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또한 포스트시즌 통산 승률도. 582로 역대 2위에 월드 시리즈 진출 시 승률도 0.675로 높으며, 유일하게 4년 연속, 5년 연속 우승 달성에 성공한 구단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제일 인기 있는 구단이자 최고 재력의 팀이다. 야구를 넘어 축구 레알 마드리드 CF, 미식축구 댈러스 카우보이스 등과 함께 세계에서 인지도와 상품 가치가 가장 높은 스포츠 구단 중 하나로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0개 스포츠팀 중 항상 TOP 5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또한 '미국의 팀'이라는 지위를 놓고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와 경합을 벌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타자 친화적인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타자 쪽에서 많은 레전드들을 배출한 구단이며,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와 감독이 무려 52명이나 이 팀을 거쳐가기도 했다. 화려한 역사만큼 라이벌들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라이벌들이라면 우선 과거 뉴욕 자이언츠 브루클린 다저스. 과거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뉴욕 지역에 있을 당시, 초창기 양키스가 갓 탄생했을 때는 홈구장도 없어 뉴욕 자이언츠의 홈구장에 더부살이했지만 양키스가 압도적인 성적과 인기로 인해 자이언츠와 다저스의 인지도를 밑으로 밀어내자 두 팀이 연고지를 캘리포니아 쪽으로 옮겼을 정도로 두 팀과 복잡하게 얽혔다. 자이언츠와 다저스가 내셔널 리그, 양키스는 아메리칸 리그이기 때문에 인터리그가 아니면 자주 만날 일은 없지만 큰 무대나 시범 경기에서 만났다 싶으면 1950년대를 기억하는 나이 지긋하신 올드 팬들이 주축이 되어 양 팀과 양 팬덤은 모두 전투력이 상승한다. 같은 뉴욕 연고지인 뉴욕 메츠와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지만 구단 역사와 성적, 인지도 면에서 양키스가 워낙 압도적이라 메츠 혼자 일방적으로 라이벌로 여기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 인터리그 경기인 서브웨이 시리즈 등을 통해서 꾸준히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가는 중이며, 2021년 새 구단주 스티브 코헨이 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하며 2022년부터는 양키스와 투자 전쟁을 벌이는 등 다시금 라이벌리가 불타올랐다. 또한 시카고 컵스 역시 양키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2018년 기준 양키스의 컵스 상대 통산 전적이 20승 4패이다. 이 중에는 월드 시리즈 8전 전승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유명한 베이브 루스의 'Called Shot'이 바로 1932년 월드 시리즈 컵스 전에서 나온 사건이다. 반대로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포스트 시즌에서 늘 양키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사실 양키스는 근 몇 년 내내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무난히 도전할 만한 전력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고 실제로도 몇 번이나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그 전력이 휴스턴을 꺾기에는 아쉬웠기에 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뉴욕 양키스 구단의 감독 및 선수단 

애런 존 분 : 뉴욕 양키스 소속 야구 감독이며 커리어 자체는 통산 13 시즌 동안 6개의 팀에서 뛰면서 타율. 263, 126 홈런, 1017안타, 555타점을 기록한 그저 그런 저니맨이었지만 2003 ALCS 7차전에서 팀 웨이크필드를 상대로 연장 11회 말 날린 끝내기 홈런으로 팬들의 머릿속에 강력히 기억되고 있다. 야구 집안에서 태어나 1994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신시내티 레즈에게 지명을 받으면서 커리어를 쌓아간다. 2018년 정규시즌 100승 62패를 거두면서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었는데, 문제는 지구 우승이 보스턴이고 그 우승을 확정 지은 게 보스턴과의 홈경기라 이때까지만 해도 현지 팬들의 여론에서는 전임 감독인 조 지라디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2018 ALDS에서도 보스턴을 만나 1승 3패로 무기력하게 탈락하면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포스트 시즌 기간 동안 신입 감독답게 투수 교체 등 감독이 경기 중 개입해야 할 많은 부분에서 전임 감독인 조 지라디보다 수완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비판의 중심에 섰다. 결국 탈락 후 한 때 감독 교체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양키스 프런트는 2019년 시즌도 결국 애런 분과 함께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2019년2년 연속 100승 이상 시즌을 만들어내며 드디어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ALCS에서 무너지면서 또다시 월드 시리즈 우승에 실패하고 말았다. 2020년 3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맞이한다. 무엇보다 팀에서 게릿 콜이라는 현역 최고의 투수 가운데 한 명을 영입해 주며 어느 때보다 월드시리즈 우승 기대가 높은 시점이라 애런 분으로서도 재계약을 위해선 확실한 성과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고 만약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다면 계약을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2021년까지 감독직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으로 펼쳐진 정규 시즌엔 애런 저지 등 야수들의 잦은 부상으로 예상 밖으로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맞대결에서 완패하면서 지구 1위 자리를 내주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지구 2위 자리를 두고 혈전을 별여야 했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야수들이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60경기 33승 27패를 기록해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성공한다.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만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는 에이스 게릿 콜과 지안카를로 스탠튼의 활약으로 2승을 먼저 따내 수월하게 디비전 시리즈로 올라갔으나 다시 만난 탬파베이 레이스에게 5차전 승부 끝에 마이크 브로소에게 8회 말 결승 홈런을 맞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콜을 제외한 2, 3 선발 다나카 마사히로, J.A. 햅의 부진도 원인이었지만 결정적으로는 2차전에서의 이상한 오프너 전략으로 사실상 한 경기를 날려먹은 영향도 컸다. 3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낸 분의 연장 계약도 알 수 없게 되었다. 2021년결국 1년의 추가 옵션을 발동하기로 결정했다. 현 상황이 상황이기도 하지만 감독으로 라커룸 내에서의 스타 선수 장악력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 마냥 무턱대고 해고를 하기 쉽지 않아서 그대로 분 체제로 가기로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주전 포수를 게리 산체스로 낙점했는데, 지난 시즌에 게리 산체스가 나오면 투수진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도 이런다고 한다. 최근 몇 시즌 산체스가 큰 경기에서 부진하고 투수들의 리드도 잘 못하면서 잘 안 풀렸지만 팀에서 몇 년 동안 기대한 포수 유망주였고 아직은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에 마지막 기회를 준 것으로 보인다. 산체스에게 2021년 시즌은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중요한 시즌이다. 당장 양키스는 카일 히가시오카가 최근 몇 시즌동안 기회를 받을 때마다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고 베테랑 포수 로빈슨 치리노스도 데려오면서 포수 보강을 했기 때문에 포수 걱정은 크게 없는 상황이었다.그러나 2021 시즌은 예상과 달리 시즌 초반부터 보스턴이 리빌딩팀 답지 않게 탬파베이와 1, 2위를 주고받는 양강 구도가 이어지고 있어서 시즌 개막 이후 단 한 번도 지구 3위 이상으로 치고 올라가지는 못했다. 시즌 막판 다시 승리를 조금씩 쌓아나가 다시 와일드카드 2위가 되었고, 9월 막판 보스턴-토론토-탬파베이로 이어지는 죽음의 9연전 중 숙명의 라이벌 보스턴과의 첫 3연전을 스탠튼의 3경기 연속 홈런을 앞세워 6연승을 달성, 와일드카드 1위로 올라서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미 탬파베이는 지구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토론토와의 3연전을 위닝 시리즈 이상을 가져간다면 포스트시즌은 사실상 확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려운 승부였던 토론토와의 3연전을 2승 1패로 마감했고 WC 공동 2위 보스턴/시애틀과는 2경기차, 4위 토론토와는 3경기차가 되었다. 남은 3경기에서 2승을 거두면 자력으로 와일드카드 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고, 1승을 거두더라도 시애틀이 한 경기만 진다면 타이브레이커로 갈 수는 있으나 디렉트 탈락 가능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탬파베이와의 3연전 첫 경기에서 1:2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9회 초에 좌타자들이 등장함에도 루카스 릿키를 아끼고 도밍고 헤르만을 길게 끌고 가다가 게임을 터뜨리며 다시금 비판받았다. 9회 초에 헤르만이 장작을 쌓고 알베르트 아브레우가 분식하면서 1:4로 스코어가 벌어졌고, 그래놓고 9회 말에 두 점을 따라가면서 결과적으로 9회 초의 추가실점이 아니었다면 경기를 이겼을 수도 있기 때문. 여기에 2차전에는 조던 몽고메리가 계속해서 얻어맞는데도 반쯤 손을 놓고 있다가 초반에 경기가 터졌고, 관중석에서는 분을 경질하라는 팬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애런 저지의 끝내기 안타로 겨우 승리하면서 롤러코스터 같은 시즌을 마무리, 4년 연속 포스트시즌 합류에 성공했다.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와일드카드 게임에서 믿었던 에이스 게릿 콜의 2이닝 3 실점 부진과 애런 저지의 치명적인 주루사가 겹치며 2:6으로 크게 패하면서 탈락했다. 거기다 분 감독 본인의 투수 교체 지시 엇박자도 겹쳐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022년 이전 시즌에 67경기서 83.2 이닝동안 정신없이 굴렀던 채드 그린이 결국 5월에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계투진 구성에 난항이 생기게 됐다. 그래도 2022년 6월 현재까지는 3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40승에 선착하고, 아롤디스 채프먼의 부재도 클레이 홈즈가 훌륭하게 잘 메우고 타선이 폭발하며 팀도 7할 승률을 기록하며 양대리그 전체 1위를 달리는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8월 들어 부상자가 속출하고 팀 타선이 침체에 빠지며 한 달 동안 10승 18패로 부진, 지구 선두 자리조차 위협받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 9월에 반등하며 정규시즌 8경기를 남겨두고 AL 동부지구 1위를 확정 지었다. 분 감독 체제가 들어선 이후 두 번째 디비전 우승이다. MLB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만큼 창단 이래 120여 년 동안 팀 내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슈퍼스타들이 배출되었고, 영구결번이 짠 편도 아니라 현재까지 영구결번이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팀이다. 전 구단 영구결번인 42번을 제외해도 2022년 기준 무려 23명이다. 2014년을 마지막으로 팀의 주장이자 최고의 인기 스타인 데릭 지터(2번)까지 은퇴하면서 0번을 제외한 한 자릿수 등번호는 양키스에서 쓸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영구결번이 많은 이유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그 유명한 양키스의 기조 하에, 개인 성적보다도 얼마나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공헌을 했는가가 영구결번의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 레전드 선수들은 실력이 뛰어나니 자연스레 월드시리즈 우승반지가 많을 수밖에 없어 당연히 영구결번을 주지만, 타 팀이라면 영구결번급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거나 오래 재적하지 않았던 선수라도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가을에 미치거나 해서 우승을 이끈 경우도 종종 영구결번을 주기 때문에 타 팀보다 영구결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수많은 영구결번 중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선수는 매팅리 단 한 명뿐이다.1. 빌리 마틴 : 2루수로 1950년대 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제패에 한몫한 경력이 있지만, 감독으로서 더 유명하였다. 특히 1970년대 양키스의 수장을 맡아 팀의 암흑기를 끝냈다. 다만 전 구단주인 조지 스타인브레너와 사이가 상당히 안 좋았다. 무려 5번씩이나 해고를 당했을 정도. 어려웠던 시기에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밑에서 양키스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선수 4회, 감독 1회). 2. 데릭 지터 : 1990년대~2000년대 양키스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유격수 자리를 지키면서 양키스의 중흥기를 이끈 뉴욕의 연인. 현재까지 21세기 최고의 양키스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전설로, 0번을 제외한 양키스의 마지막 한 자릿수 등번호를 가진 선수이다. 별명은 '11월의 사나이'. 양키스 프랜차이즈 유일의 3000안타 타자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3. 베이브 루스: 말이 필요 없는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 통산 714 홈런을 쳤고, 양키스를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으며, 야구의 모습을 완벽하게 바꿔 놓은 사나이로 양키스를 넘어서서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레드삭스 3회, 양키스 4회), 1936년 명예의 전당 헌액. 4. 루 게릭 :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과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만루 홈런 2위이며, 통산 타율 0.340에 493 홈런을 쳐낸 강타자. 야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루 게릭 병으로 인한 비극적인 은퇴로 인해 유명하다. 그의 등번호 4번은 메이저리그 최초이자, 전 세계 스포츠 역사상 두 번째로 영구결번된 번호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1939년 명예의 전당 헌액. 5. 조 디마지오 :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역대급 슈퍼스타. 56경기라는 역대 최다 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다. 루스-게릭 시대를 잇는 후계자로서 타격의 달인인 보스턴의 테드 윌리엄스와 라이벌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야구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1955년 명예의 전당 헌액. 6. 조 토레 : 선수 시절에는 양키스에서 뛰지도 않았고, 지도자 시절에도 양키스에 부임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감독이었지만, 양키스에 와서 우승 4번을 차지하며 명감독 위치에 올랐다. 당시 팀의 전력이 사 기급이긴 했지만 감독으로서 팀의 케미를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2014년 명예의 전당 헌액. 7. 미키 맨틀 : 통산 536 홈런을 때려낸 강타자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스위치히터이자 5 툴 플레이어. 잦은 부상을 달고 뛰면서도 양키스의 중견수로 맹활약했다.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올스타 20번과 리그 MVP 3번을 기록한 슈퍼스타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 1974년 명예의 전당 헌액. 8(공동) 빌 디키 : 1930년대와 40년대 양키스의 전성기 시절 안방을 책임진 포수. 11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공적은 코치 시절 후배인 요기 베라를 키워냈다는 점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8회, 1954년 명예의 전당 헌액. 요기 베라 : 빌 디키의 뒤를 이어 양키스의 주전 포수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포수로 거듭난 전설. 빼어난 타격 실력 덕분에 세 차례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양키스 감독을 잠시 맡기도 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10회, 1972년 명예의 전당 헌액. 9. 로저 매리스: 1961년에 61 홈런을 달성, 베이브 루스의 기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깬 선수. 양키스 슬러거 라인을 미키 맨틀과 함께 이어갔다. 다만 양키스 팜 출신이 아닌 탓으로 차별을 많이 받았다.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월드 시리즈에 출전해 1 홈런에 그치자 뉴욕 언론들이 꾀병이라고 디스 걸었을 정도. 하지만 오늘날 약물 파동 이후에는 진정한 홈런왕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3회. 10. 필 리주토 : 1940~50년대를 풍미한 수비형 유격수. 1950년에는 리그 MVP로도 선정된 적이 있다. 은퇴 이후에는 40년 동안 해설가로 활동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7회, 1994년 명예의 전당 헌액. 15. 서먼 먼슨 : 양키스의 포수 계보를 이어가는, 뛰어난 공격력을 갖추었던 당대 최고 수준의 포수. 클럽하우스의 리더로서 팀에 파이팅을 불어주는 선수였다. 그러나 자신의 주가를 한창 올리던 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요절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2회. 16. 화이티 포드 : 월드 시리즈 통산 10승으로 역대 최다 승 기록을 가진 투수. 정규 시즌에는 통산 236승을 기록했고 일명 회장님으로 불렸다. 최강의 빅게임 피처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약간 적어 보이는 승수에도 불구하고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1974년 명예의 전당 헌액. 20. 호르헤 포사다 :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요기 베라와 서먼 먼슨의 뒤를 잇는 양키스의 안방마님.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공격력으로 양키스 타선의 주축이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이 워낙 단명한 만큼 '양키스 Core 4' 멤버 중에서는 가장 일찍 선수 생활을 마쳤다.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21. 폴 오닐 : 양키스 클럽하우스에 폭발적인 승부욕을 심어 넣은 주역이며, 레즈 시절엔 미완의 유망주였던 탓에 누적 성적은 많이 떨어지지만 양키스에서는 그야말로 절정의 활약을 펼쳤고, 무엇보다도 1990년대 이후 양키스의 전성기 및 우승에 가장 많이 공헌한 선수 중 한 명이라는 점이 참작되어서 영구 결번되었다. 은퇴 이후에도 YES Network 해설가로 활동하며 양키스에 몸담고 있는 중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레즈 1회, 양키스 4회). 23. 돈 매팅리 : 국내 팬들에게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애미 말린스의 감독으로 더 유명하나, 선수 시절엔 양키스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인 1980년대와 90년대 초, 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던 강타자였다. 별명은 'The Hit Man'. 1루수로서 골드 글러브를 9번 차지했고, 실버 슬러거 3회와 리그 MVP 1회를 수상했으며, 1 시즌 만루 홈런 6개로 메이저리그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클러치 능력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으로 커리어가 일찍 꺾이며 명예의 전당 입성에는 끝내 실패했다. 월드 시리즈 우승 0회. 32. 엘스턴 하워드 : 양키스 최초의 '유색 인종' 선수였다. 포수와 좌익수를 맡으며 요기 베라의 후계자가 되기도 했다. 1963년에는 리그 MVP로도 선정되었으나 통산 성적은 다소 평범한 편이다. 아메리칸 리그 역대 최초의 흑인 코치이기도 하다. 월드 시리즈 우승 6회. (선수 4회, 코치 2회) 37. 케이시 스텡겔 :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을 고르라면 꼭 나오는 전설적인 명감독. 별명은 '노교수님'. 팀에게 우승을 7번이나 안겨주었던 인물이다. 양키스뿐만 아니라 같은 연고의 뉴욕 메츠에서도 영구결번된 상태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선수 2회/자이언츠, 감독 7회/양키스), 1966년 명예의 전당 헌액. 42(공동) 마리아노 리베라 :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요약되는 위대한 투수. 메이저리그 최다 세이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별명으로는 'Mariano'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딴 'Mo', 그의 등장 테마곡인 메탈리카의 'Enter Sandman'에서 따온 'Sandman'이 있다. 재키 로빈슨의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최후의 42번 선수가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선교 활동을 다니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2019년 명예의 전당 헌액. 역대 최초의 만장일치 헌액자이기도 하다.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영구결번. 44. 레지 잭슨 : 별명은 '10월의 사나이(Mr. October)'로, 많은 삼진과 불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월드 시리즈 통산 타율 0.357, 장타율 0.755, 홈런 10개를 기록했고 특히 1977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경기 3 연타석 홈런을 비롯한 4 홈런 8타점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정규 시즌에도 통산 563 홈런을 기록한 강타자.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애슬래틱스 3회, 양키스 2회), 1993년 명예의 전당 헌액. 46. 앤디 페티트 : 양키스의 전성기를 이끈 '양키스 Core 4'의 멤버이자 정규 시즌에서 통산 256승, 포스트시즌에서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19승을 올린 투수이다. 다만 성장 호르몬 복용 이력이 있는 약쟁이이며, 공식적으로 약을 복용한 것으로 확인된 약쟁이들 중에서 최초로 영구결번을 받은 선수로 당시 꽤나 논란이 되었고, 레드삭스의 오티즈 같은 약쟁이 영구결번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월드 시리즈 우승 5회. 49. 론 기드리 : '루이지애나의 번개'라는 별명으로 불린 1970년대와 80년대 양키스의 에이스 투수. 팀의 짧은 전성기와 최악의 암흑기를 흔들림 없이 지키면서 단기간에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선수이다. 월드 시리즈 우승 2회. 51. 버니 윌리엄스 :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정교한 타격과 켄 그리피 주니어에 비견되는 안정적인 중견수 수비로 양키스의 센터 필드를 굳건하게 지켰던 선수. 은퇴 이후에는 재즈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월드 시리즈 우승 4회. 윌리엄스의 존재로 인해 양키스에서 랜디 존슨은 41번, 스즈키 이치로는 31번을 달고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인 만큼 모든 구단 통틀어서 가장 스타가 많은 팀이다. 팀에서 활동했던 유명 선수로는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 213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지만 불치병으로 인해 일찍 은퇴해야 했던 루 게릭,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운 조 디마지오,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스위치히터 미키 맨틀, 명언 제조기 요기 베라, 1961년 베이브 루스의 단일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한 로저 매리스 등 많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선수로는 최고의 유격수 자리를 놓고 다투었던 말이 필요 없는 캡틴 데릭 지터,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 마리아노 리베라, 공격형 포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호르헤 포사다, 빅게임 피처와 견제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앤디 페티트, 외야에서 노련하고 안정된 수비력을 선보인 버니 윌리엄스, 로저 클레멘스와 알렉스 로드리게스, 그리고 현재 양키스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21세기 손꼽히는 거포 중 하나로 거듭난 판사님 애런 저지 등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계보는 레프티 그로브-워렌 스판-스티브 칼튼-랜디 존슨-클레이튼 커쇼의 좌완 계보처럼 한 스타의 전성기가 끝났거나 은퇴하면 곧바로 또 다른 신예 스타가 등장해 계보를 이어나갔다. 실제로 베이브 루스가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1934년에 루 게릭이 타격 3관왕을 기록했고, 게릭이 은퇴한 1939년 에조 디마지오가 첫 번째 리그 MVP를 수상했으며, 디마지오가 은퇴한 해에 미키 맨틀이 데뷔했다. 그리고 맨틀의 은퇴한 해 바로 다음 해에 서먼 먼슨이 데뷔했고, 먼슨이 사고로 사망하기 2년 전에 레지 잭슨이 양키스로 건너왔다. 그리고 잭슨이 양키스를 떠난 바로 다음 해에 돈 매팅리가 데뷔했고, 매팅리 은퇴한해에 데릭 지터가 신인왕을 수상했다. 투수는 타자에 비하면 확실한 약세인데, 잭 체스브로, 웨이트 호이트, 허브 페녹, 레프티 고메즈, 레드 러핑, 화이티 포드, 론 기드리, 앤디 페티트, 마리아노 리베라 등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포드와 리베라 정도를 제외하면 타자 레전드들에 비해 인지도 및 성적이 떨어진다. 화이티 포드조차 양키스 역대 최고 에이스는 맞지만 다른 팀의 역대급 에이스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떨어지는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점인데, 사실 양키스는 투수의 화수분이기도 하다. 명전급 투수가 잘 안 나오는 거지 몇 년 정도 활약할 투수는 꾸준히 배출한다. 불펜 에이스가 소모될 즘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불펜 투수가 우후죽순으로 나올 정도로 투수를 잘 키운다. 명전급 선발투수 만들기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실력 있는 투수들을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배출하고 소모하는 물량 전으로 볼 수 있는데, 양키스 구장이 악명 높은 타자구장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필연적인 전략이고, 그만큼 경이로운 육성능력이다. 그리고 이 화수분의 정점이 이견이 없는 역사상 최고의 불펜투수 마리아노 리베라다.

 

댓글